작업 중, 저자가 인용한 레비 스트로스의 한 구절 때문에 애를 먹다 원저로 들어가 봤다. Tristes tropiques. 내가 가진 것은 1955년 Librairie Plon판을 1984년에 재발간한 복간본이다. 원문의 단락 전체를 우선 인용해야겠다.
Il y eut un temps où le voyage confrontait le voyageur à des civilisations radicalement différentes
de la sienne et qui s’imposaient d’abord par leur étrangeté. Voilà quelques siècles que ces occasions deviennent de plus en plus rares. Oue ce soit dans l’Inde ou en Amérique, le voyageur moderne est moins surpris qu’il ne reconnaît. En choisissant des objectifs et des itinéraires, on se donne surtout la liberté de préférer telle date de pénétration, tel rythme d’envahissement de la civilisation mécanique à tels autres. La quête de l’exotisme se ramène à la collection d’états anticipés ou retardés d’un développement familier. Le voyageur devient un antiquaire, contraint par le manque d’objets à délaisser sa galerie d’art nègre pour se rabattre sur des souvenirs vieillots, marchandés au cours de ses promenades au marché aux puces de la terre habitée.
서울대 명예교수인 박옥줄 선생의 번역을 찾아 읽었다.
"여행자는 전혀 다른 문명과 직면하게 될 순간도 있다. 여행자를 사로잡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문명의 생소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회를 얻는 것도 오래 전부터 점차 드물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여행자들은 인도에 가든 아메리카에 가든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익숙한 사물들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개척하는 목적과 일정이라는 것은, 어느 날짜에 계획했던 사회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의 기계 문명은 다른 모든 문명들을 압도하고 있으나, 적어도 우리는 기계 문명의 정복의 속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다른 나라를 탐사한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들로 하여금 똑같은 결론을 갖게 할 것이지만, 우리는 그 사회의 발달에 있어 초기나 혹은 최근의 단계를 선택할 수가 있다. 따라서 여행자는 물건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원시 예술품 화랑을 그만두고 고물시장으로부터 진부한 기념품 따위를 구해서 파는 것으로 만족하는 골동품 상인이 되어버린다."
선뜻 수긍할 수 없는 대목들이 있는, 그런 번역문이다. 선학의 번역을 따른다면 내 문제는 금새 해소된다. 헌데 수긍할 수 없어 문제다. 아무리봐도 최선의 번역은 아니다. 시제와 용법이 일부 무시되기도 했는데, 내 방식은 물론 아니어도, 그야 크게 흠잡을 일은 아니다. 원문의 흐름, 그 사유의 흐름을 해치지만 않는다면야. 하지만 인용한 대목은...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 듬성듬성, 결락들이 있어 읽고 나도 개운치 않다. 그래도 전체적 의미가 그리 어려운 얘기는 아니니, 무슨 말인지 대충 알듯 하면 넘어가게 된다. 독자란 그렇다. 하지만 "왜 이 말이 여기서 나오는지"를 염두에 두고 읽어 보면 달리 읽힌다. 위 번역문 속에 부유하는 의미들의 연결은 내겐 그리 자연스럽지 못하다. (실은 약간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내 식으로 읽어봤다.
모름지기 여행이 여행자를 완전히 다른 문명들과 대면시키고, 그 생소함에 여행자가 대번 매료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점점더 보기 드문 일이 된 지 오래지만. 인도에서건 아메리카에서건 이 시대의 여행자는 의외로 놀라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 목적지와 여정들을 고르면서 하나의 다른 문명을 놓고 기계 문명을 침투시킬 더 좋은 시기나 그 속도 따위를 선택할 자유가 그에게 있으니까. 이국적인 것을 향한 선망은 낯익은 발달의, 앞섰거나 뒤떨어진 상태들의 수집품으로 귀착한다. 여행자는 팔 물건이 없어 별 수 없이 흑인 미술 갤러리를 넘기고 그 고리타분한 추억에 갇혀 현지 벼룩시장을 서성이며 흥정을 벌이는 골동품상이 된다.
내가 반나절 이 짓을 한 건 선생의 번역을 문제삼기 위함이 아니다.
덕분에 이틀간 나를 괴롭힌 애초의 문제거리가 해결돼 작업 진도를 나갈 수 있게 됐으니, 선생의 번역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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