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근년에 장 필리오자(Jean Filliozat)는 인도의 대외관계 등 7세기 이후 인도사를 다룬 제3부를 집필하면서 L'inde Classique의 초고를 끝내려 했을 뿐 아니라, 제1부와 2부의 여러 대목도 고쳐 쓰려 했습니다. 1947년부터 1980년에 이르기까지 인도학의 진전을 목격한 이였고, 그 자신 여러 면에서 인도학을 나아가게 한 당사자였으니 말입니다. 하여 그는 예컨대 퐁디셰리(Pondichéry)의 인도학연구원(Institut français d'indologie)에서 1955년부터 수집된 자료에 담긴 훨씬 더 명료한 지식들, 저 텍스트들이 드러내고 오늘날 인도에서 보기도 하는 쉬바교의 종교문학과 신앙 및 의례에 관한 새로운 지식들 전부를 이 책에 들이고 싶어했습니다. 드라비다인들에 대한 더 많은 사실들도 넣었을 테죠. 이 일을 무난히 해낼 시간이 그에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L'inde Classique은 여전히 가장 유용한 책들 중 하나입니다. 인도학연구자들의 경험이 이를 입증합니다. 이들은 지금도 줄곧 L'inde Classique의 도움을 받으니까요. 제1부와 2부의 출간과 품절 이래, 심지어 비()프랑스어권 나라에서도 재판(再版)요청이 끊이지 않습니다. 장 필리오자는 재판을 계획하지 않았고 개정판을 소망했습니다. 이제 그 소망은 이룰 수 없게 되었지만, 이 책을 원래 모습 그대로 다시 간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바람직하다 하겠습니다.

L'inde Classique의 가치는 단지 엄청난 박학다식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을 잉태한 과학적 정신도 하나의 귀감입니다. 이 책은 가히, 어떤 사상적 배경이나 이론적 의도 없이 과학적으로 정립된 사실들의 진술이자, 이 시기 인도학의 분명한 성취였던 지식들의 선보임이라 할 만합니다. 거의 결정적인 나머지, 향후 30년간 모든 새로운 연구를 위한 하나의 토대로 남을 성취 말이죠. 문헌자료의 증보(增補)도 저 성취 중 하나로, 선행자료를 폄하하지 않고 그에 신규자료를 보탰습니다. 모자람을 채우는 이 상보(相補)의 성취는 <인도문학사 History of Indian Literature>와 <동양학편람 Handbuch der Orientalistik>처럼 인도관련 데이터 전체를 서술하는, 최고전문가그룹이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더 최근의 기획들에서도 여지없이 보이며, <인도아리안 문헌학과 고고학요강 Grundriss der Indo-Arischen Philologie und Altertumskunde>같은 더 오래된 기획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총서(總書)들에 담긴 연구자료들은 L'inde Classique에 보태졌지만 쓸데없이 반복한 것은 아닙니다. L'inde Classique은 인도학의 역사에서 실로 도드라진, 또 가장 독창적인 기획으로, 필자들이 스스로에게 짊어지웠던 한도(限度) 안에서 과학적 정확성을 목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고전"(古典 classique)을 공부하는 대학생들과 더 폭넓은 교양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한도였으니, L'inde Classique은 교양()의 한 도구이길 바라기에 과도한 학술적 편성은 지양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전통적 인도의 묘사와 문헌자료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이 마지막 한계짓기는 인도 자신이 인도를 응시하는 이들에게 갖게 한 일종의 방법론적 신중함이라 하겠습니다. 순리(順理)에 따른 만큼 필자들의 뜻도 그러해서, 이들은 1권의 서문(p.17)에 밝히길 "이 작업은 무엇보다 문헌들에 의거한다"고 했습니다. 예술적 생산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깊이있는 문학적 생산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드러냈다는 것이야말로 인도가 지닌 고유한 면모입니다. 바로 저 문학 속에, 인도는 더 독창적이고 더 깊으며 더 높은 수준에서 자신의 것을 건네주었습니다. 인도의 과학적 발견들과 개념들은 산스크리트어(sanskrit)와 빨리어(pāli) 등 문헌들을 통해, 또는 그 문헌의 번역을 통해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됐습니다. 30년 전부터 인도는 산업문명의 보편적 유형을 채용하면서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만 방문객의 시선에 비친 인도의 서구식 외양은 지극히 피상적일 뿐, 인도는 이 외피 아래 여전히 그 고유의 사라사(sarasa 捺染織物)로 남아 있습니다. 전통적 면모와 독창적 문화, 그 진면목을 보기 위해 바로 오늘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인도의 저작물(著作物)에 의지해야 합니다. 책장을 넘겨가다보면 그 텍스트들이 여전히 인도를 연구하고 이해하기 위한 주된 원천임이 자연히 드러납니다.

L'inde Classique의 또 다른 특징은 구상의 일관성입니다. 이 책은 공동작업의 결실이지, 서로 모르는 전문가들의 산만한 논설들을 단순 취합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공동작업자들은 전체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공통의 문제와 개별적 문제들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집필의 짐을 같이 짊어졌습니다. 루이 흐누(Louis Renou)와 장 필리오자의 협력은 두 사람 다 그간의 작업에서 접근했던 주제들 전부를 익숙하게 다룰 줄 아는 학자들의 것 다웠습니다. 분야들 전체를 사유했고 같은 이해를 공유했으며 인도문명에 대한 경탄에서도 한마음이었으니, 루이 흐누가 언어적 사태와 말의 표현에 더 천착한다면 장 필리오자는 인식이라는 사태와 심리적 발현에 더 몰두하는 식으로 간혹 두 사람의 고유한 성향 때문에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때조차도, 두 의견은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구상의 일관성 덕분에, 필자들의 과학적 정신과 인문주의 덕분에 L'inde Classique은 인도학연구자들의 양성과 연구를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문화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인도문명의 높은 가치에 한껏 공감하여 루이 흐누와 장 필리오자와 공동작업자들은 저 문명을 서술했으니, 그것은 차라리 사실들이 자신의 문화적 역량을 말하게 하는 객관적 서술입니다. 이 책은 교양대중을 위해 기획되었지만 해외 인도학연구자들을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일반교양의 너무도 빈번한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한다는 쓰임새는 여전하며, 이 역할에 관한 한 그 무엇도 이 책을 대신하지 못했습니다.

 

삐예르 실뱅 필리오자(Pierre Sylvain Filliozat),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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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월부터 강독과 번역을 시작한 이 책이 지난 8월 드디어 출간됐습니다. 박사논문 집어던지고 나온 뒤 온통 막막했던 무렵, 옛 대학원 동료의 권유로 시작한 작업이었습니다. 돌아보니 약 6년의 시간이 걸렸군요. 공동번역이지만 초역은 시종일관 제가 했습니다. 알 만한 분들이 어딘가에 계실 터, 폴 드미에빌의 학문적 업적이야 새삼 말할 필요 없을 겁니다. 물론 불교학 및 중국학 전공자까지 포함해, 이 거장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이, 국내에 없다고 봐야겠지만. 번역서 출간 후 살펴보니 역시 별 반응이 없습니다. 심지어 불교계 신문들의 출판면조차, 비슷한 시기 출간된 박건주 박사의 책은 소개하면서 이 책은 놓치고 맙니다. 그저 웃을 일이죠. 이 책을 소개한 신문은 법보신문이 유일합니다. 다만 에띠엔 라모뜨의 인도불교사를 완역하신 호진스님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강성용 교수로부터 "고생많았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위안 삼고 맙니다. 특히 호진스님의 반응과 격려가 열렬했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일면식 없는 두 분께,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제가 읽은 폴 드미에빌은 석학이기 이전에 한 명의 탁월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 둔황에서 발굴된 짤막한 한문 필사본에 대한 폴 드미에빌의 역주와 역사적 해설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한 번 맛보시기 바랍니다. 맛깔납니다.

 

지난 6~7년간 발에 채웠던 족쇄를 풀었습니다. 발길 거칠 것 없으니, 이제 다른 세계로 떠날 채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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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Grenier, Sur L'Inde  (0) 2017.05.25

 

작업 중, 저자가 인용한 레비 스트로스의 한 구절 때문에 애를 먹다 원저로 들어가 봤다. Tristes tropiques. 내가 가진 것은 1955Librairie Plon판을 1984년에 재발간한 복간본이다. 원문의 단락 전체를 우선 인용해야겠다.

 

Il y eut un temps où le voyage confrontait le voyageur à des civilisations radicalement différentes de la sienne et qui s’imposaient d’abord par leur étrangeté. Voilà quelques siècles que ces occasions deviennent de plus en plus rares. Oue ce soit dans l’Inde ou en Amérique, le voyageur moderne est moins surpris qu’il ne reconnaît. En choisissant des objectifs et des itinéraires, on se donne surtout la liberté de préférer telle date de pénétration, tel rythme d’envahissement de la civilisation mécanique à tels autres. La quête de l’exotisme se ramène à la collection d’états anticipés ou retardés d’un développement familier. Le voyageur devient un antiquaire, contraint par le manque d’objets à délaisser sa galerie d’art nègre pour se rabattre sur des souvenirs vieillots, marchandés au cours de ses promenades au marché aux puces de la terre habitée.

 

 

 

 

서울대 명예교수인 박옥줄 선생의 번역을 찾아 읽었다.

"여행자는 전혀 다른 문명과 직면하게 될 순간도 있다. 여행자를 사로잡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문명의 생소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회를 얻는 것도 오래 전부터 점차 드물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여행자들은 인도에 가든 아메리카에 가든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익숙한 사물들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개척하는 목적과 일정이라는 것은, 어느 날짜에 계획했던 사회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의 기계 문명은 다른 모든 문명들을 압도하고 있으나, 적어도 우리는 기계 문명의 정복의 속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다른 나라를 탐사한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들로 하여금 똑같은 결론을 갖게 할 것이지만, 우리는 그 사회의 발달에 있어 초기나 혹은 최근의 단계를 선택할 수가 있다. 따라서 여행자는 물건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원시 예술품 화랑을 그만두고 고물시장으로부터 진부한 기념품 따위를 구해서 파는 것으로 만족하는 골동품 상인이 되어버린다."

 

선뜻 수긍할 수 없는 대목들이 있는, 그런 번역문이다. 선학의 번역을 따른다면 내 문제는 금새 해소된다. 헌데 수긍할 수 없어 문제다. 아무리봐도 최선의 번역은 아니다. 시제와 용법이 일부 무시되기도 했는데, 내 방식은 물론 아니어도, 그야 크게 흠잡을 일은 아니다. 원문의 흐름, 그 사유의 흐름을 해치지만 않는다면야. 하지만 인용한 대목은...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 듬성듬성, 결락들이 있어 읽고 나도 개운치 않다. 그래도 전체적 의미가 그리 어려운 얘기는 아니니, 무슨 말인지 대충 알듯 하면 넘어가게 된다. 독자란 그렇다. 하지만 "왜 이 말이 여기서 나오는지"를 염두에 두고 읽어 보면 달리 읽힌다. 위 번역문 속에 부유하는 의미들의 연결은 내겐 그리 자연스럽지 못하다. (실은 약간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내 식으로 읽어봤다.

 

모름지기 여행이 여행자를 완전히 다른 문명들과 대면시키고, 그 생소함에 여행자가 대번 매료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점점더 보기 드문 일이 된 지 오래지만. 인도에서건 아메리카에서건 이 시대의 여행자는 의외로 놀라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 목적지와 여정들을 고르면서 하나의 다른 문명을 놓고 기계 문명을 침투시킬 더 좋은 시기나 그 속도 따위를 선택할 자유가 그에게 있으니까. 이국적인 것을 향한 선망은 낯익은 발달의, 앞섰거나 뒤떨어진 상태들의 수집품으로 귀착한다. 여행자는 팔 물건이 없어 별 수 없이 흑인 미술 갤러리를 넘기고 그 고리타분한 추억에 갇혀 현지 벼룩시장을 서성이며 흥정을 벌이는 골동품상이 된다.

 

내가 반나절 이 짓을 한 건 선생의 번역을 문제삼기 위함이 아니다.

덕분에 이틀간 나를 괴롭힌 애초의 문제거리가 해결돼 작업 진도를 나갈 수 있게 됐으니, 선생의 번역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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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독자의 리뷰에 부쳐  (0) 2017.05.25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Hinduismus und Buddhismus(힌두교와 불교). 1920~1921년 출간된 종교사회학 논집(Gesammelte Aufsätze zur Religionssoziologie)의 2부(Band 2)를 이룬다. 안병무 선생 계실 적에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독려해 홍윤기 선생의 번역으로 1986~1987년 국내 출간된 책이다.

 

전체 480쪽에 달하는 분량 전부를 보려는 게 아니다. 이 책의 제1부(힌두교의 사회체제), 그 중에서도 카스트를 논한 부분만이 이번 리뷰의 관심사다. 카스트에 관한 논의는 이 책 45쪽부터 1부 마지막(175쪽)까지 걸쳐 있어 사실상 1부 거의 전체를 차지한다. 막스 베버는 카스트를 사회학의 연구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사회학자이니 그를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비록 카스트에 관한 그의 논의가 의미와 효력을 상실한지 오래라 해도 말이다. 사실 카스트 논의만을 따로 떼어내 보는 것도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일지 모른다. 메타 비평의 도움 없이는, 베버의 거대한 사회 이론 체계 내에서 그 얘기들이 놓이는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읽은 기사 두 꼭지가 좌표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됐다. 하나는 한겨레 신문 문화면 기획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 -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중 베버 관련 글이고, 다른 하나는 <막스 베버의 오만과 편견 - 독일의 승리를 꿈꾼 극우 제국주의자>(키어런 앨런, 박인용 옮김, 삼인, 2010)에 대한 이현주씨의 서평(http://marx21.or.kr/article/allView.marx?articleNo=86)이다. 진태원 선생의 글은 막스 베버가 말년에 행한 두 차례의 강연을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마르크스주의의 래디컬한 베버 비판과는 또 다른 포지션에서 베버 읽기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분명 더 큰 기획 속에서 나온 글의 극히 일부일 테고 결국엔 한 권의 저작으로 귀결될 텐데, 그 추이가 자뭇 궁금한 기획이다. 뉘신지는 모르지만 이현주씨의 글은 서평으로서 훌륭하다. 서평을 읽고 책을 구입해 봐야겠다 생각했으니. 원저자가 아일랜드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당을 여기서 또 보다니!) 리더이자 사회주의 사상가라 하는데, 베버 이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적 비판이 흥미롭다기보다 베버의 다른 면면(제국의 사회학자, 제국주의자, 인종주의적 편견, 엘리트주의자)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로운 책이다. 베버 문외한인 주제에 베버의 카스트 분석을 놓고 내가 얼마간 말을 보탤 수 있는 것은 이런 고도의 메타 비평들 덕분이다. 


"카스트가 없으면 어떤 힌두교도도 있을 수 없다."

 

<브라만의 지위, 부족, 동업조직, 신분과 관련시켜 본 카스트의 본질>에서 베버는 이렇게 쓴다. "[...] 궁극적으로는 [...] 브라만들과 관계하는 양태에 따라 그 카스트의 위계적 단계가 규정된다[...]." "오늘날 카스트 질서는 심각한 동요 상태에 있다고 파악돼 있다. 옛날 유럽에서 인도에 진출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던 캘커타 구역에서는 특히 수많은 규범들이 본질적으로 위력을 상실하고 있다. 철도, 숙박시설, 직업 계층의 변화, 수입 산업을 통한 노동 집중 및 대학 등은 각기 그러한 동요 상태를 조장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런던 출입자, 다시 말해 유럽에서 공부했거나 유럽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사람들은 이미 한 세대 이전에 탈 카스트층이 돼버렸지만, 이러한 카스트적 현상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 모든 카스트적 위계 관계들은 막바지에 다달았고 영국에 의해 교육받은 지식인 계층은 [...] 민족주의의 전파자가 되어 완만하긴 하나 멈출 수는 없는 이 과정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트 구조는 현재로선 아직도 자리를 내놓지 않고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놀라운 발언이다. 현대의 인도학자들이 하는 이야기 아닌가 잠시 착각할 정도다. 이렇게 운을 뗀 뒤, 베버는 카스트의 '개념적 표지'를 추출하기 위한 단계로 나아간다.

 

우선 카스트가 부족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논하는 것이 첫 단계다. (부족과 카스트의 차이들을 일일이 정리하진 않겠다. 궁금하면 찾아들 읽으시라.) 부족과 카스트의 결정적 차이는, 부족이 "본래적으로 정치적 결사"인데 비해 카스트는 "그 본질상 언제나 [...] 사회적 분업 결사, 궁극적으론 직업적 전문결사"라는 것이다. 다음 수순은 카스트 구성원칙을 직업결사(길드 및 동업조직)의 그것과 비교, 본질적 차이점을 논하는 일이다.(두 번째 단계) 베버가 꼽는 차이점들이란 카스트에 가해지는 의례상의 제한들과 카스트 세습 문제이고,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공동식사에 대한 의례상의 제한 유무다. "중세 후기의 도시들은 실질적으로 생산적 직업 활동을 하는 시민들의 형제애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 시민들의 형제애는 [...] 쭌프트(Zünfte) 형제애(즉 동업조직적 동지애)란 형태를 통해서 성공적 결실을 거두었다. [...] 어떤 시대의 어떤 형제애라도 식탁 공동체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것이 일상적 생활에서 실제적으로 시행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의식[예컨대 성탄절 전야 축제 등]이 거행될 때 그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러나 카스트 질서에서는 이런 일을 애초부터 배제했다. 예나 지금이나 카스트들의 완전한 '결속' 또는 '형제애'란 불가능하다." "영원한 의례상의 분리가 카스트들 사이를 지배"하고, "이와 같은 성향들은 서양의 직업결사들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완전히 '사회적 위계질서'로 제도화돼 왔다." "카스트 체제는 시민계층과 교역상들의 결속력과 정치적 위력을 가진 형제애를 제거시켜" 버렸다. 베버의 말 몇 마디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주장의 취지와 함의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동업조직, 직업결사와 카스트 간의 이 차이는 기본적으로 "세계사적 차이"란 맥락에서 논의되며, 카스트가 "어떤 종류의 순수한 직업결사와도 대립하는 근본적 이질체"라는 것이 그 결론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통념상 유사한 것으로 간주되곤 하는, 카스트와 신분의 관계 혹은 차이를 살피는 것이다. 신분이란 "사회적 명예 또는 불명예의 질이며, 주로 특정 종류의 생활양식[혹은 계급적 상황]을 조건으로 하여 그것을 통해 표출된다. [...] 신분의 문제에서 결정적인 것은 결코 '직업'이 아니라 언제나 '생활양식'이다. [...] 카스트는 의심의 여지 없이 폐쇄적인 신분이다." 베버는 신분을 계급 개념을 전제로, 다소 모호하게 계급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그는 카스트와 계급의 관계는 논하지 않는다.) 사실 이 대목의 설명은 앞의 것을 중언부언하기까지 해서 무엇을 위한 논의인지 그 이론적 효용에 의문이 드는데, 어쨌거나 카스트는 출생으로 그 위계가 결정되는 신분 제도다. 하지만 그것이 관습적 신분 질서와 구별되는 지점은 베버에 따르면 카스트 질서가 "다른 어느 지역을 뒤지더라도 그 비슷한 것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두드러지게 종교 및 의례 숭배의 방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베버의 관심은 씨족과 족벌 카리스마에로 향한다. 그가 보기에 이 두 가지는 인도의 사회조직과 사회적 질서에서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는 "씨족의 의미가 높이 평가된다는 점"이 "인도 사회조직의 근본적 특성"이며, 인도 사회의 질서는 "족벌 카리스마" 원칙을 기초로 성립했다고 쓴다. 카리스마는 본래 "비범한 자질, 또는 어떤 경우에도 누구나 획득할 수 없는 개인적 자질"이지만, 족벌 카리스마 원칙이란 이 자질을 흔히 생각하듯 개인에게 달라붙는 것으로 보지 않고 한 씨족 자체에 부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베버는 서양의 왕권신수설, 귀족 계급 혈통의 신화화 등을 족벌 카리스마 관념의 잔재들로 거론하며 이 개념이 사회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인도의 경우를 보면 어떤 특수한 자질이 한 씨족 자체에만 달라붙어 있다고 보는 것이 씨족 카리스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카리스마가 통용되는 원칙적 근거가 "개인이 아니라 씨족의 특출한 자질이라는 것이다." 인도 브라만들이란 이 족벌 카리스마 원칙을 인도 사회에 확산시킨 가장 중요한 담당자들로, "족벌 카리스마가 카스트를 지탱해 주고 카스트는 역으로 씨족의 카리스마를 지탱해"주었다. 그렇게 베버는 카스트의 구체적 모습(카스트의 주요 집단들)에 대한 논의로 옮아간다. 이 논의, 혹은 관찰에만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왕 없는 브라만, 브라만 없는 왕 모두 완전하지 않다. 

 

(1) 브라만 : 베버는 원시 주술사 계층, 특히 군주나 귀족들의 가정 의례를 관장하던 주술사들(=가문 사제들)에게서 브라만 카스트의 기원을 찾는다. 주술사로서의 브라만들이 카스트로 발전하는 과정은 그 발전 단계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한(하지만 베버의 생각과는 달리 이 또한 그리 명료하지 못하다.) 반면, 발전의 원인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브라만의 주요 활동은 의례의 집행과 교육이었고, 경제 활동 면에선 엄격한 금기를 따라야 했다. "브라만으로서 받을 수 있는 것은 급료가 아니라 시여물(혹은 보시물) 뿐이었다." 특정 힌두교파의 피고용 사제가 된다거나 어느 촌락 결사체의 사제가 되는 것 역시 삼가야 할 일이었다. 이를 어기고 두둑한 보수가 보장된 지위에 들어간 브라만이라면 어김 없이 그 신분이 격하됐다. 상황에 따라선 사원 사제직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브라만의 신분은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브라만들은 다른 한편으론 커다란 종교적 권위나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렸다. "브라만이 배설한 오물조차도 신성한 것과 연결되는 수단으로 간주되어 종교적으로 아주 효력 있는 것일 수 있었다." 또 현금과 그에 준하는 귀중한 보물, 소와 토지, 지대의 시여 등이 그들이 받는 시여물의 고전적 형태들이었다. 이 중 토지를 받는 일은 "브라만 카스트 독점으로 간주됐던 것인데, 브라만에겐 가장 비중 높은 경제적 특권이었다." 이 특권과 지위는 브라만 카스트가 정치 사회적 세력을 이루는 기반이 됐다. "왕 없는 브라만이 결코 완전한 [...] 브라만으로 간주되지 않았듯이, 브라만 없는 왕 역시 완전한 왕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브라만[...] 지위의 기반은 도대체 있다고 할 수 없는 브라만 카스트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신분을 가진 가문의 수많은 의례에서 브라만이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는 점과, 의식에서 브라만이 마치 고해 신부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브라만들은 가독사제로서의 자기 지위를 근거로 고귀하다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카스트들에게 그 신분에 합당한 질서들, 다시 말해 씨족 체제와 혼인 체제를 부여해주었던 것이다." 가정의례를 주관하는 가독사제로서 브라만의 지위는 자즈마니 관계(막스 베버는 이를 "일종의 단골관계"로 파악한다.)를 통해 보호받았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번 맞아들인 사제를 교체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그 자체로 철두철미하게 자유의사에 따라 맺어지는 자즈마니 관계는 위계 조직을 갖춘 교회의 교구 제도를 대신해 인도 사회를 지배했다.

 

(2) 크샤트리야 : 고전적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크샤트리야들은 중세 서양의 기사 계층과는 그 성격이 달랐다. 양자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기반이 달랐기 때문이다. 중세 서양의 기사들이 봉건적 위계 질서 관계에 기반했다면 크샤트리야들은 씨족 카리스마와 족벌 카리스마에 기반했다. 고대의 사료에 따르면 크샤트리야에겐 정치 군사적으로 주민을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베버는 이 임무를 일종의 "영웅 카리스마"의 표현으로 본다. 그러나 영웅 카리스마는 곧 무사(크샤트리야)의 신분적 "직업의무"로 변형되며 쇠퇴해버렸다. "고전 시대와 중세 시대의 사료를 보면 크샤트리야의 다르마란 오직 전쟁뿐이었다. [...] 침상에서의 죽음은 크샤트리야의 군사적 명예 전범에 따르면 가치 없는 일로 간주됐을 뿐 아니라 다르마에 대한 죄악으로 여겨졌다. 자신의 힘이 다한 것을 느낀 크샤트리야라면 마땅히 전장에서의 죽음을 도모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들은 본시 왕족들이었을지언정 봉건적 토지 영주들은 아니었으나, 중세를 거치며 봉건제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 대한 막스 베버의 설명은 다소 모호하지만, 어쨌든 그는 라즈푸트들을 크샤트리야의 전형으로 간주하여 "소군주, 정치적 봉건 무사, 관료 귀족, 토지 영주들, 봉토 소유자 신분"이라 부른다. 또 자기르다르와 자민다르와 탈룩다르를 거론하며 인도에서 토지영주계급의 존재를 인정한다. "[...] 무엇보다 주목할만한 역사적 귀결은 조세 청부업자들과 군록자들을 기원으로 해서 토지영주계층이 성장해나왔다는 점이다. [...] 그러나 그들이 토지영주라는 말의 의미에 걸맞는 영주가 된 것은 영국식민통치기에 이르러서" 였다. 무갈제국의 인도를 서양 중세 봉건제로 환원시키는 이런 말이 있는가 하면, 더 뒤에선 이렇게도 말한다. "[...] 인도에서도 봉건 관계는 있었다. 그러나 인도적 봉건체제는 궁극적으로 귀족의 형성, 또는 토지영주계층의 형성 등 어느 면에 대해서도 결정적 작용을 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동방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조세 청부 및 그 본질상 관료제에 따라 움직이는 강력한 국가체제에 봉사하는 군록자 및 세록자를 근원으로 하여 전형적인(봉건제라기보다는), 차라리 영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발달되었다. 따라서 영주는 본질적으로 관록(봉록)에 머물렀으며 결코 봉토(영지)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토지영주계급의 존재를 인정하다가 유보하고, 다시 봉건제와 '영지 없는 영주제'를 구분하려 드는 이런 혼돈의 널뛰기는 정말이지 봐주기 힘들다. 무갈제국의 인도와 서양 중세 봉건제의 비교에 대해서라면 이르판 하비브Irfan Habib를 읽을 때 다시 거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세 인도의 자유 평민과 산업 담당자들 

 

(3) 바이샤 : 이 대목에 오면 (바덴 포웰B. H. Baden-Powell에 크게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베버의 논의는 특히 난삽해지고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인상을 준다. 대체적인 흐름은 이렇다. 베버는 바이샤 카스트를 대략 서양의 자유 평민에 해당하는 신분으로 추정한다. 고대 사료에 따르면 바이샤는 일차적으로 농민이지만 대금업과 상업 역시 바이샤에게 열려 있었다. 오늘날엔 오히려 농민으로서의 바이샤는 완전히 사라졌다. 베버는 우선 "카스트로서의 농민이 겪어야 했던 운명", 즉 "사회적 계급 낙오 현상"과 그 원인에 대해 말한다. "[...] 인도 농민 계층의 대다수[...]가 계급 낙오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대왕국의 재정 체제로 인해 그들이 (순전히) 지대 압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데서 발견된다." 또 다른 원인들도 있다. 농민들이 "문명화된 도시 사회의 관습에 적응하지 못한 데다 군사 및 경제적 측면에서 도시의 발달과 보조를 맞출 수 없었다"는 점, 도시가 불교와 자이나교의 '불살생' 정신을 고양하는 종교적 근거지가 되어(불교와 자이나교의 교세 확장은 도시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한다.) 쟁기질을 해야 하는 농민들로선 의례상의 낙오를 감수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분 및 종교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자질로서 주술적 카리스마 대신 문학적 교육 및 지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점차 늘어난 것이 농민들에겐 가장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 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결과 직업 위계 관념상의 전도가 일어났다. 직업의 위계를 매길 때 고대에는 소의 목축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고 농경이 그 다음이었으며 가장 비천한 직업은 농민들이 경멸하던 상업, 특히 화폐 대여업이었던 반면, 후세로 오면 상업이 사회적으로 훨씬 우월한 직업으로 간주되었다. 상업에 대한 혐오는 도시 발달기를 거치며 완전하게는 아니어도 완화되는 추세였다. 물론 농민 바이샤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상인 바이샤들도 대왕국의 세습적 관료 지배가 발달함에 따라 지위가 격하되거나 그 성장이 정체되기도 했다. "오늘날 높은 위계를 누리고 있는 상인 카스트들 가운데 일부만 옛날의 도시 상인 카스트였다. 다른 상인 카스트는 세습 군주 세력이 키워놓은 독점적 상업조직에서 유래-왕은 자기 나름대로 상업을 영위했다. 거대 상인 카스트에 대한 일종의 자구책이었다.-했다. 반면에 대부분의 모든 상인 카스트들은 결코 높은 위계를 누리는 카스트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다름 아닌 불결한 카스트였으며, 관련 상업을 독점하고 있던 빠리아 부족에서 발생한 것 아닌가 추측된다." 그래도 상인 바이샤들 중 거대한 자산을 축적한 일부는 군주와 대립하거나 긴장 관계에 놓이기도 했다. "까우틸야의 <아르타 샤스트라>엔 그런 대립 상태가 금 세공사들의 저주로 표현돼 있다." 그렇지만 이런 긴장과 대립을 두고 "세습적 군주 세력에 대한 시민계층의 투쟁" 운운하는 것은 다분히 과한 언설이다. 베버의 이 표현은 바이샤를 서양의 자유 평민으로 보는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심지어는 바이샤를 "시민 계급", "부르주아 계급"의 시초 형태로까지 간주한다. 이렇게 말이다. "[...] 요지는 다음과 같다. 즉 오늘날의 바이샤 카스트는 그 자체로 인도의 역사적 운명과 정치 구조, 특히 그 '시민 계급'(부르주아 계급)의 운명이 지닌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다시피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막스 베버가 확실히 근대 유럽의 자본주의 발전 경로라는 특정한 역사적 프레임을 통해 인도 사회경제사와 카스트를 조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4) 슈드라 : "슈드라 카스트들[...]이야말로 인도의 산업 담당자였다." 슈드라 카스트들 중 두드러진 두 집단이 있다. 사회적으로 의례상 격이 떨어지는 집단과, 현물 급여를 받고 일하는 촌락의 공동인부(베버의 말로는 마을 머슴, 공동용인)들이다. 슈드라의 일차적 특징은, 이들이 과거 토지소유권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으면서 촌락 수공업 일체를 떠맡고 있었고, 초기 정착기에서부터 농민들의 가계 경제를 보완해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는 점이다. 직조공 카스트, 의류 제조업자, 도자기공, 행상꾼들, 주류 판매업자, 기름짜는 사람, 농촌 노동자와 소농민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카스트들이 슈드라였다. <마누법전> 같은 곳에서 슈드라는 노역의 의무를 지는 것으로 돼 있는데, 져야 할 노역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슈드라는 독립 상인이나 수공업자가 될 수 있었다. 슈드라 계급의 카스트적 전개에 도시 경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고대 문헌(<아르타 샤스트라>)에 따르면 도시들이야말로 일반적으로 그 본질상 슈드라, 즉 공인들의 정착지"였다 한다. 막스 베버는 서사시 시대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도에서 네 부류의 수공업자들이 형성돼 왔다고 쓴다. 촌락 노예들, 부족 수공업자들(즉, 촌락에서 자치권을 갖고 거주하던 수공업자들), 군주와 토지 영주가 자기들 땅에 거주시키거나 사원에 소속된 수공업자들, 독립 자영 수공업자들. 이들 중 베버는 부족 수공업자들이 "진정한 공인(=수공업자)의 원형"일 거라 추측한다. "한 부족 또는 그 부족의 한 분파가 자기들의 고유한 촌락을 근거지로 해서 점점 더 많이 원격지 시장을 위한 생산 활동을 증대시킨다. 그 결과 그 집단의 일부는 군주의 본거지나 궁성 근방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거기에 폐쇄적인 새로운 공인 촌락이 발생했을 것이다." 베버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름 아닌 서양에서도 그런 종류의 사실이 [...] 무수히 목격되기 때문"이란다. 바이샤와 슈드라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면, 베버는 바이샤를 상업 종사자 카스트들로, 슈드라를 수공업자 카스트들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전통적 바르나 규범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그 규범에 의하면 "바이샤는 상업과 농업을, 그리고 슈드라는 일용 잡역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그것이 지켜진 적은 없"지만 말이다.(박정석, "카스트의 정의와 범주", <카스트, 지속과 변화>, 이광수 외 공저, 소나무, 2002, p.23에서 참조 및 인용.) 

 

카스트, 바르나, 쟈띠. 카스트 시스템을 설명하려 드는 대개의 시도들에 함께, 꼭 동시에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베버가 이해하는 카스트란 말하자면 인도의 전통적 바르나 위계-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슈드라- 관념에 해당하는 (그러나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닌) 내용들이다. 베버의 카스트 이해는 딱 여기까지고, 불가촉천민의 존재를 알고 있긴 하나 그는 이 천민들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라 슈드라를 논하면서 적당히 취급하고 만다. 결정적으로 베버에겐 쟈띠에 대한 이해가 없다. 그나마 자즈마니 시스템을 알고 있긴 한데 그 앎마저 불완전하고 일면적이라는 게 문제다. 베버는 자즈마니 시스템을 "일종의 단골관계"로, "족벌 카리스마의 근거"로 파악한다. -카스트, 바르나, 쟈띠, 자즈마니 시스템에 대해선 다음회 리뷰, <인도문화와 카스트 구조>, <인도의 오늘>, <카스트 : 지속과 변화>에서, 주로 박정석, 김경학 선생의 연구에 의거해 정리한 뒤 내 생각을 보태려 한다. 베버의 자즈마니 시스템 이해의 문제도 거기서 살펴보는 게 낫겠다. 지금은 베버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베버는 중세 인도가 자본주의 발달의 토대들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왜 유럽식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데 실패했는지를, 카스트를 논하는 곳곳에서 언급한다. 예컨대 카스트가 "결속력과 정치적 위력을 가진 형제애를 제거시켜"버렸다고 쓰는 것은 카스트 때문에 유럽에서와 같은 시민계층이 인도에선 성장할 수 없었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베버는 이렇게 덧붙인다. "군주로서는 카스트들 사이에 반목을 조성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 카스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한때 얼핏 보기에 거의 유럽적인 도시의 발달에 근접하는 듯했던 인도의 사회구조를 역전시켜 카스트 체제의 독점적 지배로 전형시킴에서, 군주들이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그 게임에 임했는지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인도의 사회구조는 서양식의 발전 가능성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전개되고 말았다." 또 이렇게도 쓴다. "인도에서 나타난 발전상의 독특한 점은, 도시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길드 조직이나 쭌프트 조직이 서양에서와 같이 시의 자치권 획득으로 귀결되거나 [...] 사회경제적 지역 조직으로 전개되지 않고, 이미 도시 발달기 이전에 시작됐음이 분명한 힌두교적 카스트 체제가 유일한 지배 체계로 되어 다른 조직을 압살하거나 왜곡시키고, 그런 조직들이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못하게 방해했다는 데 있다." 그럼 이런 얘기는 어떤가? "훈련된 군대와 관료진들을 거느리고 등장한 세습 군주 세력들은 길드의 세력 상태와 그에 대한 재정적 의존 상태에 점차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 군주의 봉직자들과 부르주아적 부호 세력 사이의 대립은 당연한 것이었다. 까우틸야의 <아르타 샤스트라>에는 그런 대립 상태가 금 세공사들의 저주로 표현돼 있다. 금 세공사들 가운데 일부는 고대의 사제 화폐 주조를 담당하던 자들이었으며, 나머지 일부는 군주에 대한 안정된 금전 대부업자들이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소수라는 수적 열세 이외에도 인도 특유의 몇몇 상황들이 세습 군주 세력에 대한 시민계층의 투쟁을 비참한 종말로 끝나게 만들었다." 그 몇몇 상황들 중 하나가 바로 "힌두교 카스트 구조의 현존"이다. 보다시피 베버의 카스트란 인도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중대한 질곡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바이샤와 슈드라를 각각 중세 인도의 자유 평민과 산업 담당자들로 과도하게 설정한 이유도 비교적 분명해진다. 그런 설정은 적어도, 카스트에 대한 단죄를 정당화하는 극적 효과를 낸다. "카스트 질서란 그 전체적 본질로 미루어보건대 [...] 철두철미하게 전통 숭배적이며 반합리적 성격을 가진 것이다." "카스트 체제가 그 기초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 산업 자본주의의 근대적 조직형태가 발생될지도 모른다는 발상은 비현실성의 절정을 이룬다. 직업의 변경 또는 노동 기술의 대체가 모두 의례상의 격하를 초래할 수 있는 '의식법'이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경제적, 기술적 변혁을 도모한다든가 아니면 하다 못해 그 법을 준수하는 가운데 최초의 맹아적 형태라도 자라날 수 있게끔 해준다는 것은 도대체 상황에 걸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렇게 카스트 비판을 마무리 한 뒤 베버는 이 폐쇄적 "카스트 질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거"인 힌두교, "브라만적 종교의 특성"에 대한 논의(제2부)로 들어가게 된다. 


역자 후기를 보니 홍윤기 선생이 애를 쓰긴 했지만 본문 여기 저기 문제가 보인다. 번역어 선택상의 오류들도 그렇고, 읽어갈수록 가독성도 떨어진다. 조속히 개정판 번역이 나오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 더 나은 번역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충실한 비평이나 비판적 해제가 함께 수록돼야 함은 물론이다. 홍윤기 선생이 번역하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독일서 인도철학, 인도불교 공부하고 돌아와 대학에 재직 중인 우수한 국산 연구자들이 있다. 이런 책 재번역 안하시나? 숱한 오류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저작 아닌가. 다름 아닌 막스 베버의 것이니 말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베버 전공자들이나 인도학 연구자들과의 공동 번역도 도모해 봄직한데, 도무지 이런 움직임이 없다.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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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인도 사회를 이해하는 인문사회과학의 균형적 접근. 2007년 민속원에서 출간한 책으로, 카스트를 단일 주제로 한 단행본은 이 책이 국내 최근작일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리뷰가 끝나면 번역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다. 기존 카스트 관련 연구서들을 정리하고 파악하는 데 이미 많은 시간을 투여했다. 머리말을 쓴 김경학 선생의 말마따나, 이 책은 전작들(<인도 문화와 카스트 구조>, <카스트, 지속과 변화>)과의 내용적 겹침이나 심지어 이 책 자체 안에서의 내용적 중복이 흠이긴 하지만, 몇몇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연구물"이다. 저자 박정석 선생은 남부 데칸 고원에 위치한 칸디라는 마을에서 현지 조사(1994년 11월~96년 1월. 일러두기 참조.)를 수행하고 이에 의거해 박사 논문을 썼는데, 이 책은 그 논문에 기초한 것이다. 그래서 책의 1장부터 9장까지엔 당시에 현지 조사한 내용과 분석이 각 장마다 실려 있다. 2007년도에 국내 출간된 책이지만 1장과 2장, 4장을 제외한 모든 글들이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작성됐던 논고들이다. 논고들을 모아 편집한 책치곤 (말했다시피 일부 중복된 내용들이 큰 흠이긴 하나) 일관성과 짜임새가 어느 정도 있다. 지금까지 본 카스트 관련서들 중 가독성도 가장 높다.

 

1장, 카스트에 관하여는 <카스트, 지속과 변화> 중 박정석이 집필한 서설의 내용과 상당 부분 겹친다. 독자로선 이미 숙지한 내용들이라 긴장감이 떨어졌다. 특기할 사항은 없지만 논의 중 '카스트 체계와 불가촉천민'을 다룬 부분에서 호베르 들리에쥬(Robert Deliège)를 인용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박정석이 인용한 이 말은 <카스트를 넘어서>의 제3장(70~71쪽)에서도 반복 인용된다. "카스트 체계 내에서 불가촉천민의 존재는 종교적, 사회적으로 거부되었으나 경제적으로는 절대 필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위계적인 카스트 구조 내에서 불가촉천민은 내부자이면서 동시에 외부자인 애매한 위치에 있다."(강조는 내 것.) 호베르 들리에쥬는 벨기에 인류학자로, 인도 불가촉천민에 대한 연구를 했고 그를 주제로 한 단행본 연구서도 있다. 이렇게 말하면 과한 말로 들릴 지 모르나 인상적인 통찰이다. 뒤에 다시 정리하겠지만, 불가촉천민을 사유할 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몇 가지 포인트 중 하나라 하겠다.

 

2장은 현지조사 대상지인 데칸 고원의 마을 칸디와 그 마을의 카스트들을 소개하는 장이다. 하지만 단순한 소개에 머물지 않고 마을 내 카스트들의 분류에 의거 <카스트, 지속과 변화>에서도 봤던 예의 그 논지를 피력한다. 박정석의 논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몇몇 문장들을 인용해본다.

"카스트는 과거처럼 직업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아니라 제한적 요소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 심지어 카스트 전체가 전통적 업무를 버리고 있다. 이주가 늘어나고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면서 [...] 새로운 직업을 얻을 기회가 많아졌다." "오늘날 [...] 많은 경우 카스트에 덧붙여진 업무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한다." "지금은 개인적 이해관계가 카스트의 이해관계보다 앞서는 경우가 많다. 개인은 다른 개인과 카스트 내부에서 그리고 카스트 바깥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있다. 카스트 간의 위계적 상호의존 관계가 무너지고 [같은] 카스트 내부에서도 경제적 차이가 두드러지면서 전통 직업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실종된 지 오래다." 카스트의 전통적 업무와 카스트 구성원의 생계수단이 점점 분리되고 있다. "정과 부정의 관념 혹은 위계 개념은 약화되고 있는 반면, 카스트 혹은 카스트 블록이 하나의 정치적, 경제적 단위체라는 자각은 강화되고 있다. [...] 카스트 체계는 점차 약화되고 카스트의 전통적 구조 역시 이런 저런 방식으로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라는 카스트 소속감은 여전히 지속되며, 나아가 정치 경제적 이해집단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분야의 직업, 예를 들면 이발사와 세탁부, 목수와 대장장이 등은 여전히 독점적 분야로 남아 있다. 또한 쇠가죽 다루는 일이나 토디 채취 같이 의례적으로 오염되거나 평판이 낮은 직업일지라도 경제적 이득이 있는 경우 개별 카스트들이 독점권을 행사한다."

신자유주의로 변태한 자본주의가 침투, 확장될수록 전통적 카스트-직업 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야 쉽게 수긍이 간다. 내가 주저하는 것은 그 다음 대목이다. "카스트 간 위계적 상호의존 관계가 무너지고" 있고 "정과 부정의 관념 혹은 위계 개념이 약화"되고 있다는 대목 말이다. 그렇다면 앞서 읽었던 것, 즉 정과 부정 관념에 의거한 카스트 금기를 놓고 도시와 농촌에서 발견되는 "이중 문화 현상"이나 "이중적 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람들이 공적 영역에서 대놓고 하위 카스트를 차별하거나 오염을 경계하진 않지만 (혹은 못하지만), 사적 영역에선 여전히 혹은 더 견고하게 전통적 오염 금기를 지킨다는 이야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저 단순한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까?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면 고민할 게 별로 없다. 하지만 그건 쉬운 선택이다. 내 생각에, 위계 개념은 약화되는 게 아니라 형태를 달리해 변주되고 있다. 혹은 위계의 설정에서 기존의 종교적 정-부정 관념이 아니라 다른 기제들이 침투해 작동하고 있다. 내 생각의, 의심의 근거는 다른 데서 찾을 필요 없이 위계 개념의 약화를 주장하는 박정석 선생 자신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을 보자. "바르나 체계가 전인도에 걸쳐 공통된 모델이라면 쟈띠는 지역적 체계다. 쟈띠 체계는 카스트 사이의 분리, 상호의존 및 위계로 특징된다. 하지만 카스트들 간의 위계는 상대적이며 정과 부정으로 표현되는 종교적인 기준이지만, 경제적 지위와 정치적 힘의 유무에 따라 그 위계가 달라진다." 박정석은 스리니와스와 Van der Veen 등의 말을 빌어 3장에서 이렇게 썼다. 왜 어디에선 편의에 따라 위계 개념의 약화를 말하고, 또 다른 곳에선 역시 편한대로 정치 경제적 권력 관계, 즉 세속적 힘의 역학에 따라 위계가 달라진다고 쓰는 걸까. 왜 위계가 약화된다고 했다가 다시 그 존재를 인정하는 걸까. 그래서 박정석(등등)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거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 기제에 입각한 위계는 약화, 쇠퇴하는지 몰라도 위계는 새로운 기제의 작동에 따라 새로운 질서를 재구축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4장, 카스트 위계와 음식 교환(3장과 5장은 한 데 묶어 잠시 뒤에 말하고 싶다.)의 논의 역시 같은 맥락, 즉 이중적 태도나 이율배반의 맥락에서 독해 가능하다. 우선 박정석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요약하자면 카스트 체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위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 음식 교환이라는 잣대만으로 모든 카스트를 일관성 있게 배열하여 설명하는 것은 몹시 거칠고 곤란한 작업이다. [...] 위계상 상위 및 중간 카스트들 사이에서 음식 교환과 관련된 행위규범이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음식과 관련된 문제는 이제 [...] 개인의 선택 사항이 되고 있다. 개인들은 경제적, 정치적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마주한다. [...]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일부 학자들은 개별 카스트가 집합적 개인(collective individual)으로 변모되었다고 설명한다.(뒤몽과 Fuller 참조) 집합적 개인으로서의 개별 카스트는 변별적 문화와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위계적으로 서열화 된 카스트들이 [...]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나, 개별 카스트들이 이제는 서로 경쟁하는 실체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카스트 체계 전체의 성격 변화라기보다는 체계 내부에서 그 관계의 정도가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카스트는 존재하지만 카스트 체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뒤몽의 주장과 부합된다.​ 덧붙이자면, 오늘날에도 카스트는 존재하지만 과거의 카스트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카스트 성격이 어떻게 판이하게 달라지는지는 그동안 많이 봐 왔다. 굳이 길게 문장을 인용한 이유는 뒤몽 때문이다. 루이 뒤몽으로 대변되는 구조주의적 시각을 일관되게 비판해 온 것이 김경학, 이광수, 박정석 등의 글이었다.(세 분 모두 인도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돌연 여기서 박정석이 뒤몽에 의거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으니 놀라울 수밖에. 아니, 뒤몽의 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부디 뒤몽의 이 말을 기억하시라. 뒤몽이 그렇게 쉬이 비판할 수 있는 별볼일 없는 학자가 아님(이 얘긴, 뒤몽을 비판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한 마디다. <머리말>에서 김경학이 썼듯이 뒤몽의 연구서는 "이론적 토대가 되는 고전 중에 고전"이다. (그런데도 아직 국내 번역되지 못했다.) 뒤몽의 시야가 북인도에만 국한돼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말을 더하고 싶다. 국내 인도학자들 누구도 인용하지 ​못​ 다음 책(Editions de l'Ecole des Hautes Etudes en Sciences Sociales, 1957) 남인도에 대한 뒤몽의 관심을 증언한다.

 

잠깐 옆길로 새버렸다. 다시 "음식 교환과 관련된 행위규범"이나 금기가 느슨해지고 있다는 말로 돌아가자. 이 말은 공적 영역에나 적용 가능한 얘기다. 왜냐하면 박정석 자신의 말마따나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규범은 공적인 공간에서가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 재단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구분되며, 두 영역에서 음식 교환 양상이 서로 달리 나타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역시 박정석 선생의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카스트 차별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한다. [...]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하층 카스트, 특히 하리잔이 음식을 요리하거나 대접을 할 경우 어느 정도 망설여져 약간 거리를 둔다고 한다. [...] 아직도 사적 영역에서는 음식 교환이 카스트 위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집안에서 정(purity)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가내 의례가 있을 경우 음식은 아주 소중하게 취급된다. ​즉, 사적 영역에서 음식은 여전히 정과 부정의 관념을 담는 핵심적 지표이다." 음식 교환에 대한 금기를 둘러싸고 공적, 사적 영역에서 이렇게 달리 나타나는 태도를 가리켜 선생은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고 썼다.

 

그런데 "이중적 태도"는 여기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박정석의 다음 얘기는 전부 중요해서 길지만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카스트 위계상 양끝단인 브라만과 불가촉천민을 제외하고는 모든 카스트들이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즉, 상층 카스트에 대해서는 평등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동등함을 주장하고, 하층 카스트에 대해서는 위계상의 차이를 강조한다. 정과 부정의 관념에 바탕을 둔 위계적 가치는 사적 영역이나 자신보다 낮은 카스트와의 관계 속에서 작동되고 있다. 반면에 근대적인 평등 이데올로기 및 부와 교육으로 표상되는 세속적 가치는 공적 영역이나 자신보다 높은 카스트와의 관계 속에서 행위 준거가 되고 있다." 이런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이중적 태도, 이율배반, 이중문화 현상을 카스트 위계와 오염 금기가 약화돼가는 과정의 과도적 현상으로 읽기가 아무래도 꺼려진다. 음식 교환의 금기가 느슨해지고 있음을 곧 카스트의 와해 내지 해체의 징후로 읽을 수 없음도 물론이다. 박정석도 그런 식으론 얘기하지 못한다. 다만 "음식과 관련된 문제는 개인의 선택 사항이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의 발화에 내재된 욕망은, 그 발화가 발휘하는 효과는 카스트 위계의 무화(無化)다. 

 

이제 3장(카스트 체계와 불가촉천민)과 5장(마을 제의와 카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3장에서 박정석은 바르나 체계가 힌두 고전에 근거한 브라만적 세계관의 표현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텍스트주의(textualism)를 비판한다.

"텍스트는 실제 경험의 표현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성인들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 텍스트는 규범이나 모델이지 실제 행위를 규정하는 규칙이 아니다. [...] 텍스트는 브라만적인 이데올로기를 하나의 경쟁적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인도 사회에서 유일하며 사회 자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인도 사회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반 관습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지역적 상황과 텍스트에 실린 권위적 지식과의 구별이 필요하다. 이 말은 독서를 통해 얻은 견해나 상층 카스트들의 견해와 실제 현지조사를 통해 얻은 주민들의 견해를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5장의 첫머리('힌두이즘과 카스트')에는 방금 인용한 말과 묘한 대비를 이루는 대목이 있다. 인용해본다.

"힌두이즘은 크게 텍스트적인 힌두이즘과 대중적인 힌두이즘으로 구별된다. 텍스트적인 힌두이즘은 문헌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종교로서 산스크리트적인 전통에 속하는 신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중적 힌두이즘은 실제 생활에서 힌두들이 신봉하고 있는 살아 있는 종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범주는 배타적인 영역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힌두이즘에 관한 문헌에 내재된 개념과 관념 체계는 대중적 힌두이즘의 믿음과 지속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텍스트적 힌두이즘, 텍스트로서의 힌두이즘 역시 규범과 모델로서의 힌두이즘이지 실제 대중의 종교 행위를 완전하게 반영한 것은 아니다. 텍스트로서의 힌두이즘과 대중의 신앙 행위로서의 힌두이즘 사이에는 그래서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5장에선 그 간극에 굉장히 관대하다. 두 범주(텍스트와 실제 행위)는 배타적 영역이 아니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3장에선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취한다. 텍스트와 실제 지역 상황에 대한 "구분"이 강조된다. 이 구분에는 현지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권위, 욕망, 편향이 숨어 있다. 저 말대로라면 현지조사를 못 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잠자코 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얘기를 받아 적어야 한다. "인도 사회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규범이나 모델로서의 텍스트보단 실제 현지조사를 통해 "실증적 자료"를 얻어야 한다는 소리다. 이 인류학적 경험주의, 실증주의는 5장에서와 달리 텍스트와 실제 현지 상황 사이에 배타적 선을 긋는다. 이렇게 말이다.

"인도 사회 연구에서 인도 사회를 관통하는 단일한 이론적 토대가 있다는, 또는 있을 것이라는 인식은 인류학자들의 환상이거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구체적 접근은 이론적, 텍스트적 접근보다는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한 사례들을 모아 정리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

 

인용문은 6장 말미의 한대목이다. 여기엔 이론적, 텍스트적 접근을 강등시키려는 의도가 선연하다. 현지조사를 좀처럼 가기 힘든 나로선 선생과 생각이 다르다. 선생의 말대로 텍스트가 실제 경험의 표현이 아닐 순 있다. 하지만 텍스트는 관념과 사유, 욕망, 이데올로기들,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동향들의 표현이다. 때문에, 5장에서 텍스트로서의 힌두이즘과 대중적 힌두이즘 어느 하나를 기각할 수 없듯이, 카스트 연구에서도 텍스트와 실제 양상들 모두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힌두이즘의 두 범주가 연계돼 있듯이, 카스트의 두 범주에 대해서도 구별과 연계를 동시에 사유해야 한다. 이게 3장과 5장을 읽고 하고 싶었던 얘기다. 그밖에 경청해야 할 박정석의 말 몇 대목을 뽑으면 이렇다.

"의례적으로 오염된 카스트라는 텍스트적인 관념은 실제 생활에서 그다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직업에 따른 분리와 배타적 권리가 강조되고 있다. 오염된 직업에 종사하는 탓에 하층 카스트나 불가촉천민이 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힘이 없고 열악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오염된 것으로 간주된 업무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카스트 체계에서 불가촉천민은 지배적인 카스트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인 동시에 카스트 체계 유지의 동인이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다. [...] 불가촉천민이라는 개념 자체는 위계적으로 배열된 사회 체계에서 최하층으로 규정된 범주를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 아주 다양하고 상이한 위치에 있는 카스트들을 한 데 뒤섞어 마치 [...] 하나의 내적 동질성을 갖는 집단[인양] 잘못 파악[하고 있다.]"

 

좋은 책에 딴지를 많이 건 것 같다. 이어지는 6장의 와탄다리 체계, 7장 무슬림과 카스트는 그냥 읽으면 된다. 도움이 되는 좋은 내용들이다. 8장 판차야트 선거와 청년단 얘기에선 특히 뒤몽에 대한 비판을 눈여겨 봐두면 좋고, 책의 결론부격인 9장은 8장 뒤몽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인도 사회 연구의 대안 의제를 제시하고 있다. 논자에 따르면 뒤몽은 인도 사회 연구에서 개인과 개인주의를 경시했고, 인도인의 행위란 카스트, 마을, 종교, 가족으로 수렴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뒤몽은 카스트와 위계를 인도 사회 및 문화를 대변하는 '문지기 개념'으로 설정한 것이다. 뒤몽 이후 인도 연구에서 경험적 주체로서의 개인이란 테마는 그 설 자리가 없었다 하니, 뒤몽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미루어 알게 된다. 박정석의 <카스트를 넘어서>는 바로 그런 경향, 결핍에 대한 안티테제다. 그는 "가족과 카스트 같은 집단 정체성이 개인의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인도인 역시 서구인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유일성과 가치 및 개인적 성취를 자각하고 있으며 개인을 개인적 명성으로 평가"하는 만큼, "인도 사회를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선 행위 주체로서의 개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쓴다. 그가 기존의 전통적 카스트 경계를 넘어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려는 자발적 결사체(계조직)들에 주목한 맥락은 그렇다. 책 말미에, 논자는 카스트 제도와 그 위계적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서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사회의 여러 측면들을 분석, 검토하는 것이 인도 사회를 객관적,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더 바람직한 방법이라 쓴다. (그 여러 측면들이란 도시, 부족, 사원, 금욕주의, 여성 등등이다.) 그래서일까, 난 이 책을 카스트란 개념과 관념(혹은 통념)은 물론, 카스트에 관한 일반 이론의 해체를 지향한 책으로 읽었다. 아니, 그렇게 읽힌다. <카스트를 넘어서>의 전략이 성공한 것일까? 아니다. 저자는 때론 공격적으로 이 전략을 관철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그럴 때면 전략을 슬쩍 수면 아래 숨긴다. 그간 인도가 겪어온 역사적 변화들, 혹은 사회경제적 변화들(상업경제의 등장, 환금작물 재배의 확대,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산, 산업화, 교육기관의 확대, 직업의 다양화, 위계적 사회구조의 부분적 와해 등)이 있다. 뒤몽의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경향들, 사회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뒤몽의 이론 자체가 역사적 산물이다. 아마 그 자신 무오류의 보편이론을 주장하진 않았을 텐데도, (<카스트를 넘어서>를 포함해) 뒤몽을 비판하는 논자들은 그와 그의 이론을 역사적 맥락에서 탈구시켜 버린다. 부당한 전제고, 이래선 뒤몽에 대한 정당한, 온전한 평가를 할 수 없다. 난 여전히 카스트와 위계가 인도 사회를 읽는 유효한 도구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아니 인도 사회뿐 아니라, 카스트와 위계는 어쩌면 모든 인간 사회와 인간이란 종 일반의 욕망을 읽는 유효한 도구일지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저널리스트와 출판 에디터 출신 역자들의 안목이나 글 다루는 솜씨도 훌룡하지만, 대단한 것은 역시 약관의 저자가 보여준 공력이다. 공력이라면 학식 따위, 뭐 그런 걸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력이란, 무릇 글 쓰는 이라면 갖춰야 할 성실함을 말한다. 이 책은 첫째, 굉장히 성실한 한 편의 보고서로, 좌우파 인사들을 망라한 수많은 인터뷰와 대면 접촉에 의거한 경험적 연구이자 차브에 대한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다. 철저히 경험적인 글. 이론에 경도된 국내 좌파 문필가들이 좀 배웠으면 좋겠다. 둘째,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문제를 다루는 솜씨, 사안에 접근하는 저자의 스타일이다. 표면에 드러난 문장 스타일이나 문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approach style"이라 부르고 싶은, 문예적일 수도 있고 정치적일 수도 있는 심해의 어떤 감각이다. 영국 특권층과 중간계급(출신의 정치인 및 언론인들 등등)을 비판하되 빈정대지 않는다. 비판에 격을 지키니, 상대방이 귀를 연다. "계급전쟁"과 "새로운 계급정치"를 얘기하되 과잉이나 편향이 없다. 가만 보면 "최고의 논픽션" 소릴 듣는 것도 아마 저자의 이 탁월한 균형감각 때문이지 싶다. 책 내용이야 나까지 중계방송할 필요는 없을 테고 그저 읽어보시면 된다. 대처리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책이다. 이만한 분석이 국내에 있을 리 없고,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는 시의적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난 무엇보다 좋은, 젊은(!) 좌파 문필가의 탄생이 반갑다. 이 젊은 친구가 부디 영국의 '존경할만한 좌파' 지식인의 계보를 잇는 거장으로 성장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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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하 번역 중인 책이 한 챕터 전체를 할애해 루이 뒤몽의 생애와 작업을 다룬다. 번역 중에 잘 안 풀리는 대목이 있어 뒤몽의 신상 정보를 뒤졌고, 그러다 프랑스 빠리와 인도 뉴델리에서 활동하는 사회학자 롤랑 라르디느와(Roland Lardinois)가 인도 일간지 "THE HINDU"에 게재한 글 "Remembering a sociologist and Indologist of repute"(2011년 8월 1일자)를 만났다. 나중에 어차피 해야 할 작업인데다 좀 편하게들 보시라고, 내 갈 길 바쁘지만 우리말로 옮겨둔다. 어딘가에 있을 독자를 위한 일종의 서비스. (아래 번역문의 상업적 이용이나 도용을 금함.) 

 

기사 원문은 아래 링크 참조. 

http://www.thehindu.com/todays-paper/tp-opinion/remembering-a-sociologist-and-indologist-of-repute/article2312012.ece

 

저명한 어느 사회학자이자 인도학자를 기리며

프랑스 인류학자 루이 뒤몽이 살아 있었다면 2011년 8월 1일 그의 나이 100세가 됐을 것이다. 많은 비판을 받았긴 해도 인도 사회에 대한 그의 해석을 무시하기란 불가한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루이 뒤몽의 인류학적 작업은 인도 사회학을 위한 신세계를 열었으니, 그의 저작은 세계적으로 호평받긴 했어도 여전한 논란의 대상이다. 

뒤몽은 1911년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태어나 1998년 파리에서 죽었다. 처음엔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0)의 일개 학생으로 1936년부터 1939년까지 파리 인류박물관(Musée de l'Homme)의 민족학연구소에 있다가, 그 뒤 1937년부터 1951년까지 민속예술박물관의 어시스턴트로, 이어 전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의 첫 작업 "타라스크"(1951)는 프랑스 남부의 한 대중적 종교 축제에 대한 민족지학적 연구다. 그렇지만 나중엔 인도에 관한 저작으로 세계적 명성과 인정을 얻었다.

뒤몽은 전쟁포로로 독일에 있는 동안(1940~1945) 독일의 인도학자이자 자이나교 연구자 발터 슈브링(Walther Schubring)과 산스크리트어 공부를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자 남인도로 가서 타밀 나두(Tamil Nadu)주의 깔라르(Kallar. 농민, 경작자 카스트)들 사이에서 현지연구를 수행했다. 1957년 그는 남인도의 어느 하위카스트에 관한 논문 한 편(A South Indian Subcaste : Social Organization and Religion of the Pramalai Kallar. M. Moffatt, L과 A. Morton이 옮긴 1986년 영역판)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인도 사회학의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바꾸었다. 이른바 전통적 인도 사회를 이해함에서, 뒤몽은 그때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이 선호해온 촌락이라는 프레임웍을 거부하고 촌락 단위보다 더 넓은 일정 지역을 망라하는 위계적 사회 조직을 강조하며 카스트(혹은 하위카스트)에 초점을 맞췄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몽은 인도로 돌아간 스리니와스(M. N. Srinivas)의 후임으로 옥스퍼드 대학 교수(lecturer)가 됐고, 1955년에는 당시 파리 고등연구학교(EPHE) 제6섹션(지금의 EHESS. 사회과학고등연구학교)의 교수로 뽑혔다. 그는 인도를 대상으로 한 사회학과 비교사회학을 가르쳤다. 1957년에는 영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포콕과 공동으로 새로운 학술 저널 "Contributions to Indian Sociology"를 출범시켰다. 옥스퍼드와 파리에서 발행된 이 저널은 1966년부터 델리(Delhi) 소재 경제성장연구소의 마단(T. N. Madan)이 편집을 맡은 후로 오늘날까지 해당 분야의 주된 참고 저널(main reference journal)로 남아 있다.

그렇긴 해도 뒤몽 일생일대의 역작은 여전히 1967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위계적 인간"(Homo hierarchicus)이다. (1970년과 1972년 뒤몽 자신이 영어로 번역함.) 이 책은 강력한 이론적 배경을 깔고 있는 인상적인 하나의 종합으로, 여기서 뒤몽은 인도 카스트 사회를 하나의 전체로 보는 자신의 견해를 개진했다. 뒤몽에 따르면 인도인들은 태생적으로 불평등한 하나의 신분에 각기 귀속되고, 각 개인에게는 물론이고 개별 카스트에게도 집단적으로 부과된 청결의 등급에 따라 맨 밑의 불가촉천민(당시만해도 이들은 '달리트'를 자청하지 않았다)에서 맨 위 브라만까지 서열화되었다. 

"위계적 인간"의 출간 후, 카스트 시스템에 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원없이 했다고 느낀 뒤몽은 인도 사회학과 거리를 두었다. 그는 일종의 평등주의에 기반했던 근대 개인주의의 기원을 다루는 새로운 연구 영역을 설정해 이를 불평등한 카스트 시스템과 대비시켰다. 이것이 "호모 아이콸리스"(1977), "개인주의에 관한 시론들"(1983), "독일 이데올로기"(호모 아이콸리스 II, 1991)의 주제였다. 프랑스에서 독일까지 갔다 다시 회귀하는 이 저작들은 그러나 전통적 정치 철학 사상사에 속하는 것들로, "위계적 인간"처럼 경험적 연구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다.

"위계적 인간"은 인도와 유럽 인류학자들의 토론과 논박의 대상이 돼 왔다. 카스트 시스템에 대한 뒤몽의 사회학적 해석은 널리 호평받는 동시에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뒤몽의 명민한 분석이 체제 내 '지배의 관점'을 취한 데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 가장 래티컬한 비판이었다. 그런 '지배의 관점'은 사제들(브라만)의 것이거나 귀족들(크샤트리야)의 것으로, 뒤몽이 폭넓게 참조한 고전 산스크리트 텍스트들 속에 잘 표현돼 있고 정당화돼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 비판이 맞다면 학자들은 다음을 되물어야 한다. 첫째, 이런 재현들이 생산되는 사회적 조건을 당연시해선 안 되는 것인지, 둘째 그렇다면 그런 재현들의 사회적 용도는 대체 무엇이냐는 물음 말이다. 힌두 카스트 시스템을 조직하는 권력과 지배의 관계들은 텍스트상으론 일부 부정되기도 하나 (무시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분명하게 인정되고 분석돼야 한다. 거기다 뒤몽이 발전시킨 비교사회학은 개인주의와 전체주의(holism)의 이항대립, 혹은 평등주의적 서구와 인도 같은 위계적 전통적 전근대 사회들의 근본적 대치로 환원된 채, 그런 사회들을 향한 이국 취향의 향수를 인류학자가 공공연히 자백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를 주제로 한 뒤몽의 전반부 작업은 보기 드물게 조리 있는 사회학적 시도의 표본으로서, 누구든 현대 인도의 사회적 형성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의 작업을 무시하거나 가벼이 여길 수 없다. [end]

  

 

 

라르디느와의 책인데, 그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인도의 발명 : 비의秘義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2007년 11월에 출간된 책. 네루의 책 "인도의 발견"을 연상케 하는 제목. 불어로는 둘 다 L'invention de l'Inde다. 눈여겨 볼 참이고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살펴보겠다. 책에 대한 리뷰도 물론. 지극히 전문적 학술서라 우리말 번역 출간은 아무래도 어려울 게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국내에서 프랑스 인도학의 성립사(histoire)에 관심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된다고. 이 나라는 인도 (혹은 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인문적 관심과 저변이 너무 얄팍하다. 하긴, 얄팍한 게 어디 이 뿐이랴. 아뭏든 그게 내 고민이다. 내 인도 관련 번역 기획이 어디까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가. 앞으론 인구 수마저 얄팍해진다는데. 헌데 표지가 왜 저모양인지 모르겠다. 확연한 이국풍이면서 괴이하다, 의도적인 건가 싶을 정도로.

이 책 번역 출간에 관심 있는 고집스런 출판사, 혹여 있으십니까?

 

Roland Lardinois, 이 아저씨다. 인상이 장난 아니시다. 이 사람, 작업을 보면 여러모로 흥미롭다. 시간을 내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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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영이 옮긴 이 책의 원제목은 Field Notes on Democracy : Listening to Grasshoppers. 가히 '인도 민주주의의 묵시록'이라 부를 만한 책이다. 묵시록엔 도래할 신천지에 대한 예언이 있다고들 하는데, 이 책에는 그런 어설픈 희망의 예언조차 없어 음울하기 짝이 없다. 대신 책의 첫 장을 열면 하얀 백지 위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성과 희망을 분리하는 법을 배운 이에게". 

읽어 가노라면 인도 현대사에서 벌어진 몇 가지 비극적인, 상징적이고 징후적인 사건들과 만날 수 있다. 인디라 간디 암살 후 벌어진 시크교도 학살(1984), 이슬람 사원 바브리 마스지드의 파괴(1992), 포크란 핵실험(1998), 인도 의회 테러 사건(2001), 구자라트 무슬림 대학살(2002)로 이어진 사바르마티 특급열차 화재 사건(2002), 인도의 카슈미르 군사 점령과 카슈미르인들의 봉기(2008), 뭄바이 연쇄 폭탄 테러 공격(2008) 등. 아룬다티 로이의 평론에 보이는 비범함 중 하나는 (인도의) 특수한 문제들을 어떤 보편성의 지평에서 다루고 사유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평론들이 국적과 지역에 관계 없이 독자의 호응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도 그녀는 예의 저 테러와 학살들, 거기 담긴 광기와 부조리들을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1915)과 연결시킨다. "연합"과 "진보"도 그렇다. 이 두 개의 키워드를 매개로 인도의 정치 혹은 사회경제적 현실과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터키 정당 "연합진보위원회"가 만난다. 인도의 맥락에서 연합이란, 그녀는 이를 민족주의란 말로 풀었지만, 민주적 가치 따위에 아랑곳 않는, 인도 제도정치에 횡행하는 기괴한 일련의 연정들이고, 이 연정의 중심에 극우 힌두 민족주의 세력이 있다. "2000년 들어, RSS는 6만여 지부와 400만여 자원자를 통해 자신의 교리를 인도 전역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전 총리 바지파이, 전 내무부 장관이자 야당 당수인 아드바니, 구자라트 주 총리를 세 차례 연임한 나렌드라 모디가 있습니다. 언론, 경찰, 군대, 정보기관, 사법부, 행정부 고위 관료 중에도 RSS의 이데올로기인 힌두뜨와를 비공식적으로 추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RSS의 진짜 힘은 수십 년 동안의 노력 끝에 사회의 모든 차원에 걸친 조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어떤 정치적 문화적 집단도 이에 필적하지 못합니다."(본문 205~206) 나렌드라 모디는 2002년 구자라트에서 무슬림 대학살이 자행되던 당시 구자라트주 총리였고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와 타타 그룹 총수들이 머리 조아려 찬사를 보낸 '신자유주의적 진보'의 전도사로, 오늘날 마침내 인도 총리가 된 작자다. 그러니까 진보는 일반적 맥락에선 개발과 발전에 다름 아니며 탐욕과 착취의, 인도의 맥락에선 어쩌면 학살의 다른 이름이다. 그녀는 인도의 결함 있는 민주주의가 파시즘을 키웠다고 말하면서 쓴다. "지난 몇 년간, 걸음마 단계이던 파시즘을 이만큼 키운 것은 인도의 수많은 '민주주의' 기구들이다. 의회, 언론, 경찰, 행정부, 대중 모두가 파시즘과 놀아났다."(본문 64)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이 그랬듯이, 인도에서도 학살에 가담하거나 부추겼던 이들 누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죄를 묻지 않는 것은 인종 학살에 꼭 필요한 전제 조건입니다. 인도는 대량 학살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대단한 전통이 있습니다. 일일이 말씀드리자면 책 몇 권으로도 모자랄 겁니다."(본문 207) 그런데 학살이든 학살자에게 베푸는 관용이든, 이는 인간의 결함이나 일시적 일탈이 아니다. "인종 학살은 사랑과 예술과 농경 못지 않게 오래고 지속적이며 인간 조건의 크나큰 부분을 차지하는 습성입니다. 15세기부터 지금까지 저질러진 인종 학살의 대부분은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찾으려는 유럽의 침략 과정에서 큰 몫을 했습니다."(본문 202) 바로 이 레벤스라움이 문제다. 인도 중산층과 상류층은 지금 그들만의 "하늘의 왕국"에서 그 레벤스라움을 더 넓히기 위해 하층 카스트와 무슬림들, 달리트와 토착부족민(adivasi)들과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그들은 이 "식충이들"을 인도 지도에서 아예 지워버리고 싶어한다. 근래 읽었던 <르몽드 디플로마틱>의 기사, 벵자맹 페르낭데즈가 쓴 "인도 언론 재벌의 낯 뜨거운 광고판촉"에서 본 장면 그대로다. 거기, 중상류층을 주 독자로 삼는 어느 영문 일간지 편집국장이 등장해 '두 개의 인도가 있다'고 하면서 지도를 그리곤 하층 카스트들, 게토에 갇힌 무슬림들, 달리트와 아디와시들의 인도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이 장면은 열 명의 무슬림 소년 테러범들이 벌인 2008년의 뭄바이 테러와 겹쳐진다. 채널 인디아 TV 앵커가 묻는다. "당신들은 포위되었소. 이제 죽은 목숨인데 왜 항복하지 않는 거요?" 돌아온 답이 이랬다고 한다. "우리는 매일 죽는다. 이렇게 죽느니 하루라도 사자처럼 사는 게 낫다."(본문 252)

국가 권력과 인도 정보기관의 정치공작에 희생당한 사람들이나 살해당한 무슬림들 이야기, 인도 경찰의 고문과 누명 쓴 사람들, 터무니 없는 인도 사법 권력과 그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를 겨우 헤치고 나와(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결코 유쾌하게 읽을 수는 없으니까) 책을 덮으면, 아룬다티 로이가 던진 질문 한 마디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무엇으로 둔갑시킨 걸까?" 웬걸, 다름아닌 우리에게 묻고 있잖은가. 남의 일이 아니다. (이 리뷰를 작성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입니다. 참고하시길.)


아룬다티 로이의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다른 책 한 권. 예전에 일독했던 아마(르)티야 센의 The Argumentative Indian (이경남 옮김)이다.


"살아 있는 인도"로 이름을 바꿨지만, 원래 제목대로라면 '논쟁을 즐기는 인도인' 정도다. 이 책을 떠올린건 두 권의 책들이


절묘하게 만나면서도 인도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에서 양자가 대척점에 놓이고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아룬다티 로이와 아마르티아 센은 서로를 (아마도) 딱 한 번씩 인용 내지 언급한다. 물론 우호적으로, 하지만 짧게. 마주침은 짧고 둘 사이의 거리는 멀다. 로이의 어조가 처절하고 섬뜩하다면 센의 어조는 점잖고 한가롭다. "첫째, 민주주의의 실천은 만족해도 좋을 것 같다. 1967년에 "타임스"의 특파원은 ..... 인도에서 민주주의는 곧 끝장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운명은 그가 예상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때마다 조직적인 선거가 합리적 공정성을 유지했고, 전통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덧붙이긴 한다. "인도 민주주의의 성과에 과오가 없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인도의 민주주의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나 로이의 평론들에 비춰보면 인도의 이른바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로 내달리고 있는 만큼, 센의 이야긴 아무래도 나이브하게 들린다. 로이가 카슈미르와 구자라트에서 인도 군경과 폭도들에게 윤간당한 뒤 산채로 화형당한 무슬림 여성들을 이야기할 때, 센은 3장의 한 절에서 '인도 여성의 행복 찾기'를 얘기한다. 그 내용이나 포지션이 유엔(UN) 보고서를 영락없이 빼닮았다. 점잖지만 대개는 공허한. 특히나 더 괴이하고 지루했던 부분은 4장(인도 바로보기 - 여기서 "바로보기"를 또 보다니!)의 '인도, 인도인의 정체성과 미래'라는 글이었다. 이는 보아하니 도랍 타타(Dorab Tata) 기념 강연 원고였던 것 같은데, 이 인물은 타타 그룹을 만든 잠셋지 타타의 맏아들이었다. 센은 이 글에서 도랍 타타에게 "인도 산업계의 걸출한 지도자"이자 "훌륭한 박애주의자"라는 헌사를 바친다. 센의 이런 태도나 어조는 그 자신이 인도의 현실이나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멀찍이 물러서 있는지 말해준다. 그 거리 때문일까? 대중적 인문교양서로 본다면 나름 의미 있는 책이지만, 세계적 명사의 책이라 내심 기대하고 읽은 나로선 다소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인사이트 시리즈"라는 총서명이 무색할 정도로, 통찰이란 이름에 값하는 사유는 찾기 어려웠다. (나도 번역하는 자로서, 애써 번역하신 분에겐 좀 미안한 얘기다... 하지만 번역문 자체는 훌륭하다. 흠잡을 데가 거의 없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는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다. 저자는 인도의 역사와 전통을 거슬러오르며 인도인들이 예로부터 "논쟁하기 좋아하는", 혹은 논쟁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 역사적 예로 아쇼카왕과 악바르 대제, 오래된 공개토론의 전통을 거론한다. 그것도 몇 번이고 거듭해서. 비로소 원제목이 와닿고, 번역서의 개작된 제목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센이 왜 이 얘길 이런 식으로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극우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자가당착을 드러내고 그 프로파간다 자체를 와해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똑같은 사례들이 몇 번이고 반복될 뿐, 그 내용을 심화시키지 못한 것이 센의 한계이고 내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미덕은 다른 데 있다. 아룬다티 로이는 "우리가 모르는 인도"에서 "인도가 단순한 근대국가가 아닌, 유서 깊은 문명에 속하기를 바랄 수는 없을까?"(64)라고 혼잣말 하듯 되뇌었는데, 센의 책이 바로 이 유서 깊은 문명과 문명의 교류(2장. 인도의 문화와 소통 - 지적 교류와 열린 문화)를 논하니, 이 대목이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센의 미덕이다. 중국과 인도 문명의 교류나 아랍과 인도 문명의 혼종성은 정말이지 흥미로운 주제다. 이 얘기 때문에라도 이 책은 일독할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몇 가지. "살아 있는 인도" 중 '인도에 관한 서구적 시각의 세 가지 범주'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다. 이 세 범주를 옮긴이는 문예적(curatorial) 방법론과 권위주의적(magisterial) 방법론, 이국취향적(exoticist) 방법론이라 불렀다. 옮긴이도 고민했으리라 보이는데, 해당 본문 내용을 읽어봐도 차라리 그냥 큐레이터의 방법론, 치안판사 혹은 법관의 방법론, 이국취향자의 방법론(혹은 방법론이라기보단 시선)으로 옮기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 편집상의 실수로 보이지만, 자이나교의 '두 개의 국가'이론(301쪽)이란 것은 없다. 영어 원문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자이나교가 아니라 아마 무하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의 '진나'일 것이다. 진나와 '두 개의 국가'도 이 책에서 몇 번 거듭되는 얘기다. 역시 거듭 나오는 산스크리트 용어 '아카르야'는 '아짜리(/르)야'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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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생각나 옮겨둔다, 상상의 섬 인도에 적힌 장 그르니에의 말.

미지의 어느 독자께서 포스팅한 말이기도 하다. 

 

​"열매가 익기까지 시간이 걸리듯 정신의 작업에는 일정한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59쪽)

"어떤 정신의 소유자인가에 따라, 또 그들의 연륜에 따라 똑같은 잠언이라도 그 의미가 풍부해지거나 빈곤해진다...

 수난과 믿음이 그렇듯이, 지성에도 고된 여정이 있다."(149쪽)

 

상상의 섬 인도에 관한

좀 어이없는 리뷰 한 편을 봤다.

그 독자는 이 책이 제 취향과 맞지 않는다며,

책을 탓했다.

상상의 섬 인도라는 제목이 절 낚았다며,

낚시질 운운하기도 하더라.

한심한 소리

저가 읽을 책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한

좁은 안목과 어린 감수성, 낮은 지력을 탓할지언정

책을 탓할 일은 아닐 터.

위에 적어둔 장 그르니에의 조언을 새기기 바란다.

 

인도에 대한 단순 기행문, 여행 체험기, 감상적 취향의 글이나

"현학적 감성"(? 이게 대체 뭘까?) 따위를 기대하는 분들은

부디 상상의 섬 인도를 읽으시면 안 된다.

읽는다면 아마, 그만한 고역도 없을 테니까.

(장 그르니에 자신, 인도를 여행한 적이 없다...)

접근을 돕자는 취지에서 쉽게 말씀드리면

상상의 섬 인도는 장 그르니에 섬 중 "상상의 인도" 부분을 따로 떼어내

그 안의 사유들을 마음껏 심화 확장시킨 책으로 보시면 되겠다.

섬의, "상상의 인도"에서 김화영 선생이 '잘 몰랐기에 범했던' 여러 오류들을 정정한 책이기도 한데

이걸 알아본 독자는 아직 없다.

이미 고령이신 선생을 욕보일 마음은 없고

그저 "상상의 인도" 번역에도 오역문이 좀 있다는 이야기일 뿐.

(또, 저 한심한 리뷰만 아니었다면 아예 안 했을 말.)

제아무리 식견과 능력이 뛰어난 번역자라도 모르면 오역할 수 있다.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저가 한 오역을 대하는 태도지 오역 자체가 아니다. 

하여간, 그러니 김화영 선생의 "상상의 인도"가 도통 이해 안 가는 분들이라면
상상의 섬 인도를 더욱 읽어선 안 된다.

반면 김화영 선생의 오역에도 불구하고 "섬"의 그 대목-상상의 인도-이 왠지 끌리고

더 알고 싶은 독자라야 상상의 섬 인도를 권할 만하다.

끝으로 한마디.

NRF에 장 그르니에의 인도 관련 기고문들이 실렸을 때 일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당대의 모 문필가는 장 그르니에의 글을

'우리 NRF에서 당장 빼버려야 할 쓸데없는 글' 정도로 취급했다.

 

나만 드는 생각일텐데, 이 문필가의 독설은

"상상의 섬 인도"에 대한 예의 저 독자 반응과 겹친다.

장 그르니에 하면 그저 섬이 다인줄 아는, 이 독자의 리뷰가 재미난 이유다.

섬을 필사하기도 했다는 이 독자

그러나 장 그르니에가 한껏 매료됐던 한 세계를 함부로 폄하하는 이 독자

이 독자에게 장 그르니에는 어떤 의미고

섬은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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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판사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가 장 그르니에의 인도 관련 에세이를 모아 출간한 책 Sur L'Inde입니다.

 

오른편, 저 아래는 번역입니다. 첫 출간되고서 3년간 독자의 꾸준한 외면을 받다가, 2015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로 선정된 나머지 (이 소식을 전한 출판사 편집장님께 "그럴리가" 있냐고 되묻던 기억이 납니다.) 급기야 각지의 도서관 서가나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된 책입니다. 그래도 인상적인 리뷰가 하나 있긴 했습니다. 인도철학을 좀 아시는 분이었는데, 어느 독자께서 이 책을 열심히 읽고 메모를 잔뜩 해두신 걸 보고 이내 쓸쓸한 마음 덜었습니다.

 

 

 

이 책 관련해 한 가지 말씀드리면 일부 포털사이트나 온라인서점의 저자 소개글 중 "따뜻한 실존주의자, 20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에세이스트이자 철학자"란 문구가 등장합니다. 아마 인터넷서점의 MD분들이 덧댄 말들일 텐데, 착각입니다. 책 날개의 저자 소개나 역자의 말에 적힌 내용과 단박에 배치되는, 장 그르니에 자신이 필시 거부할 상업적 레토릭에 불과합니다. 그는 실존주의자도, 그리 "위대한" 글쟁이도 아니었으니 (지명도로 치면 그는 마이너리티에 속함) 독자들은 오해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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