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와 출판 에디터 출신 역자들의 안목이나 글 다루는 솜씨도 훌룡하지만, 대단한 것은 역시 약관의 저자가 보여준 공력이다. 공력이라면 학식 따위, 뭐 그런 걸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력이란, 무릇 글 쓰는 이라면 갖춰야 할 성실함을 말한다. 이 책은 첫째, 굉장히 성실한 한 편의 보고서로, 좌우파 인사들을 망라한 수많은 인터뷰와 대면 접촉에 의거한 경험적 연구이자 차브에 대한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다. 철저히 경험적인 글. 이론에 경도된 국내 좌파 문필가들이 좀 배웠으면 좋겠다. 둘째,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문제를 다루는 솜씨, 사안에 접근하는 저자의 스타일이다. 표면에 드러난 문장 스타일이나 문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approach style"이라 부르고 싶은, 문예적일 수도 있고 정치적일 수도 있는 심해의 어떤 감각이다. 영국 특권층과 중간계급(출신의 정치인 및 언론인들 등등)을 비판하되 빈정대지 않는다. 비판에 격을 지키니, 상대방이 귀를 연다. "계급전쟁"과 "새로운 계급정치"를 얘기하되 과잉이나 편향이 없다. 가만 보면 "최고의 논픽션" 소릴 듣는 것도 아마 저자의 이 탁월한 균형감각 때문이지 싶다. 책 내용이야 나까지 중계방송할 필요는 없을 테고 그저 읽어보시면 된다. 대처리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책이다. 이만한 분석이 국내에 있을 리 없고,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는 시의적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난 무엇보다 좋은, 젊은(!) 좌파 문필가의 탄생이 반갑다. 이 젊은 친구가 부디 영국의 '존경할만한 좌파' 지식인의 계보를 잇는 거장으로 성장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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